이문성 : 테니스에 관한 斷想

테니스에 관한 斷想

이 문 성(백산 신경정신과)

 

나는 “붉은 책” 속에서 나의 환상을 미적으로 손질하고자 하는 쓸데없는 짓을 착수했었는데 그것은 결코 완결되는 일이 없었다. 내가 아직 올바른 언어를 쓰고 있지 않다는 것, 내가 그것을 더 번역해야 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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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대치할 만큼 완전한 언어는 없다는 사실이 내게는 분명해졌다. 만약 언어가 삶을 대치하고자 시도한다면 언어뿐 아니라 삶도 파멸될 것이다.
-C. G. Jung의 회상, 꿈 그리고 사상-

테니스를 다시 치기 시작하게 된 것은 참으로 우연이었다. 재작년에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올 때까지는 테니스를 치고 싶어도 칠 형편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사를 오고 나서 우리 아파트 단지에 테니스 코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무슨 횡재를 한 느낌이 들었고 곧 테니스 동호회에 가입해서 테니스를 다시 치기 시작했다. 이사오기 전에 나는 앞으로 이사를 가면 테니스 코트가 있는 아파트로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기는 했었다. 그러나 이 집으로 급하게 이사를 오는 바람에 그런 것을 챙길 여유는 없었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테니스를 무척이나 잘 치는 사람일 것으로 상상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사실 나는 원래 운동하고는 담을 쌓고 살던 사람이었다. 하긴 그래도 의예과 1학년 때 유도반에 들어갈 뻔 하기는 했었다. 만약 그랬었다면 젊어서부터 건강한 체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겠지만 나는 대학에 입학한 그 해 이른 봄에 장티푸스로 입원까지 하고 나서 병후의 몸조리를 해야 했었기 때문에 유도반에 들어갈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도 의과대학 생활이 바쁘다는 핑계로 별다른 운동을 하지 않고 지냈다. 그러다가 나이 삼십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운동다운 운동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자발적인 것이 아니었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군대에 입대한 뒤 군의관 후보생으로서 어쩔 수 없이 받게 된 힘든 육체적인 훈련이었다. 물론 그때는 훈련이라는 걸 건강에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할 리가 없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육체적으로 힘든 적은 없었다. 그러나 두 달 반 동안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운동을 한 덕분에 훈련이 끝났을 때 내 체중은 7 Kg이나 빠졌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내가 이렇게 주절주절 옛날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내가 운동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인지 내향적 성격 때문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축구를 하든 야구를 하든 나는 잘 하는 운동이 없었다. 내 기억으로는 축구를 잘 하고 싶어서 열심히 뛰어다녀 보았지만 헛발질이 많았었고 야구를 할 때도 헛스윙이 많았던 것으로 보면 원래 타고난 소질이 그랬던 것 같다. 이렇게 운동감각이 떨어진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던 나는 십 년 가까이 그만 두었던 테니스를 다시 치게 되었을 때 나는 단단히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전에 테니스를 배우고 잠시 동호회 활동을 할 때 나는 회원 중에서 실력이 가장 낮은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는 나는 나름대로 테니스를 잘 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하였다. 그래서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찾게 된 것이 현대 테니스 타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프로 선수들의 동영상을 천천히 볼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사이트였다. 나는 이것으로 테니스를 잘 칠 수 있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보다 테니스를 더 잘 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 같았다. 현대 테니스 타법은 과거에 내가 배웠고 아직도 많은 동호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타법과는 많이 달랐고 물론 과거의 타법보다 월등히 좋은 타법이었다. 나는 세계 랭킹 1 위인 페더러의 타법을 배우기로 하였다. 나는 최고의 검법이 적혀있는 비밀스러운 책을 발견하여 그대로 훈련한 결과 당대 최고의 검객이 된 무협소설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현대 테니스 타법과 함께 내가 레슨을 통해서 깨달은 점들을 요약해서 정리해놓았다. 그것은 나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고 남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내용들이었다. 테니스 시합을 할 때 이러한 요점들만 잊어버리지 않고 공을 친다면 금방 실력이 늘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그것이 효과가 별로 없음을 알게 되었다. 현대 테니스 타법에 대한 나의 이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비밀을 정리해놓은 노트의 내용을 수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비밀노트 내용의 수정은 그 뒤로도 타법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생길 때마다 계속해서 바뀌었다. 그러다가 언젠가 나의 비밀작업은 중단되었다. 얼마 전에 그때 마지막으로 정리해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지금 입장에서 보면 그 때 나의 현대 테니스 타법에 대한 이해는 너무나도 엉터리였다. 물론 지금도 완벽하게 이해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테니스를 쳐보면 안다. 테니스를 다시 시작할 때보다는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서툴다는 사실은 아직도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분석가 수련과정에서 내 꿈과 피분석자의 꿈을 분석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아! 이제는 꿈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알겠다.” 하고 깨달았지만 곧 깜깜해지고는 또 다시 깨닫고 또 깜깜해지는 것을 얼마나 반복했었던가? 요즈음 나는 내가 꿈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나 자신의 판단이 아니라 실제분석과정에서 피분석자의 개성화에 얼마나 효과적인가로 결정됨을 잘 알고 있다.

임제 스님이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붉은 살덩이 위에 자리 없는 참사람(無位眞人) 하나가 있어서 항상 그대들 모두의 얼굴로 드나드니 아직 확증을 잡지 못한 사람은 살펴보아라.” 그때 한 스님이 나와 물었다. “무엇이 자리 없는 참사람입니까?” 스님은 선상에서 내려와 그를 움켜잡고 말씀하셨다. “말해라, 말해!” 그 스님이 머뭇거리자 스님은 그를 탁 놓아버리면서 말씀하시기를, “자리 없는 참사람이라니, 무슨 마른 똥막대기 같은 소리냐.” 하고는 방장실로 돌아가버렸다. –임제록-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나에게 최고의 테니스 스승은 나의 몸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현대 테니스 이론을 공부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나에게 가장 잘 맞은 나만의 타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나의 몸이다. 혼자서 스윙 연습을 하다가 보면 내가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나 또는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바를 내 몸이 가르쳐줄 때가 많다. 이렇게 알게 된 스윙 폼을 연습을 통해서 익숙해졌을 때 실력이 많이 늘게 되었다. 물론 몸 그 자체가 스승일 수는 없다. 최고의 스승은 몸을 통해서 나에게 최고의 타법을 가르쳐주는 말로 할 수 없는 그 어떤 존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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