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희 : 분석심리학적 정신치료과정

<2005. 12. 한국 분석심리학회 발표요지> ④

분석심리학적 정신치료과정

Psychotherapeutic Processes in Analytical Psychology

이도희 李道熙

이도희정신과

분석심리학적 정신치료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절대 유일의 방법은 없고 개별 환자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적용할 수 있을 뿐이라고 답할 수 있다. 정신치료의 대상이 되는 환자는 신경증 때문에 우리를 찾아올 때, “특수한 부분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심혼 전체와 세계 전체를 가져오는 것이다”라는 융의 언급에서 정신치료에 대해 몇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우리는 환자를 전체적으로 보아야한다. 즉 환자의 병든 부분뿐 아니라 건강한 부분, 그리고 그의 의식뿐 아니라 무의식까지도 고려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치료과정에는 세계관의 문제도 고려돼야만 한다.

융은 정신치료의 발전과정을, 인위적이긴 하지만, 네 가지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한 바 있다. 첫 번째 단계는 고백(Confession)의 단계로, 이 단계에서는 억압에 의해 숨겨진 비밀이나 억제된 감정과 정동들을 치료자 앞에서 토로하여 다른 사람과 그것을 공유(communion)함으로써 치료가 이루어진다. 정화법(cathartic method)이 이에 속하는 방법인데, 이것을 통해 환자는 억압되고 잊혀졌던 개인적 그림자를 인식하게 되고, 비밀스런 감정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여 치유적인 효과를 얻는다. 그러나 너무나 의식에 집착되어 있어 자신의 어려움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만을 요구하는 환자와 정화법으로 치료는 됐지만 무의식에 고착되어 반복적으로 그러한 방법이 필요한 경우, 혹은 의사에 고착되어 그를 떠나면 다시 재발하는 경우가 있음을 알았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무의식에 접근하는 완벽한 기법이 필요했는데, 그러한 방법이 두 번째 단계인 설명 혹은 명료화(Elucidation) 단계의 치료법이다. 프로이트의 방법이 여기에 속한다. 그것은 꿈이나 환상, 억압된 소망자료들을 인과론적이고 환원적인 해석을 함으로써 전이와 무의식의 원인을 해석하여 치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완벽한 명료화를 통해 환자는 지적인 인식에는 이르렀지만 유아적인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생겼고, 많은 예의 신경증에서 쾌락원리보다는 권력본능으로 더 잘 설명되는 것을 관찰하였다. 이런 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세 번째 단계인 교육(Education)의 단계의 치료법이 생겨나게 되었다. 아들러의 사회교육으로 대표되는 치료법으로, 이들은 신경증 등으로 만들어진 완고한 습관은 통찰로만 고쳐지지 않고 연습에 의해 얻어지며 그것을 얻기 위해서 적절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여 교육을 중시한다. 이들의 목표는 사회적인 적응과 정상화이며, 무의식을 과소평가하고 심지어는 무시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평균 이상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단지 정상성이라는 도덕적 강요를 하는 것은 그들을 따분하고 절망적으로 만들 뿐이라는 경우도 있음을 관찰하였다. 특히 일단 사회적인 적응과제를 정상적으로 이루었던 인생의 후반기에 있는 환자들의 경우 위의 세 가지의 치료법으로는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전 단계의 치료법을 모두 포기하고 치료자와 환자 두 인격이 마치 두 화학물질을 섞는 것처럼 변환의 과정을 거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면서 치료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 단계가 융이 말하는 네 번째 단계인 변환(Transformation)의 단계다. 여기서 치료는 의사와 환자와의 상호영향의 산물이다. 때문에 의사도 동등하게 치료과정의 한 부분이고 변환의 과정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의사의 교육 분석의 필요성이 제기 되었고 의사의 윤리적 태도의 중요성도 강조된다.

융은 약 6년 뒤에 한 강연에서 정신치료의 방법을 다시 암시요법과 변증법적 방법으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암시요법은, 위의 세 단계에 해당하는 치료법으로, 인생의 전반기 환자에게 주로 적응될 수 있는 치료법이고 분석적이고 환원적인 해석을 주로 한다. 변증법적 방법은, 변환의 단계의 치료법으로, 이전의 이론과 실제를 모두 포기하고 환자와의 진지한 대화를 하면서 서로의 소견을 비교함으로써 치료하는 것이다. 여기서 치료자는 더 이상 행동하는 주체가 아니고 환자의 발달과정을 함께 체험하는 자이다. 이 치료는 주로 인생의 후반기의 환자를 치료할 때 사용되고, 무의식의 자료들을 해석학적이고 합성적인 해석을 한다. 이 치료의 궁극적인 목표는 원형적인 체험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개성이 자기를 체험하는 것이다. 융은 암시요법을 ‘과학적 치료’, ‘작은 치료’라 부르고, 변증법적 치료를 ‘철학적 치료’, ‘큰 치료’라고 불러 후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일반적으로 정신치료의 주된 목표는, 인생의 전반기 환자의 경우에는 사회적응과 정상화를 위해 자아를 강화하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이고, 후반기 환자의 경우에는 개인적인 삶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그 자신의 내면적인 존재를 경험토록 하는 데 있다. 그렇지만 어느 환자라 하더라도 치료의 목표가 미리 이론적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며, 환자와의 경험 그리고 환자의 본성과 삶의 의지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신치료의 주 목적은 환자를 상상할 수 없는 행복으로 이끌어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고통을 참는 철학적 인내와 꿋꿋함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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