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12. 한국 분석심리학회 발표요지> ②
신화와 민담의 분석심리학적 이해
Understanding of myths and fairy tales from the viewpoint of Analytical Psychology
이유경 李裕瓊
이유경 분석심리학연구소
20세기에 이르러 신화와 민담 연구자들은 대부분 ‘신화적 사고’가 현대인의 ‘과학적 사고’와는 다른 것이며, 현대인이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는 것으로 다루었다. 그러나 인류의 조상들이 가졌던 이 ‘신화적 사고’는 원시적 사고이긴 하지만, 직관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통합적 사고였음을 밝히기도 하였다. 결국 신화와 민담에 대한 현대의 연구는 암묵적으로 우리가 상실한 인간의 근원적 뿌리를 회복하게 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심층심리학자들은 꿈과 환상 등의 연구를 통하여 ‘신화적 사고’가 인류의 조상들만이 가졌던 과거의 것이 아니라,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으로 밝히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일찍부터 꿈 등 무의식의 산물에서 <외디푸스 신화>와 같은 근친상간적 주제가 등장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럼에도 결국 프로이트는 신화를 인류의 유아기적 산물로 간주하고 말았다. 이에 반하여 융은 현대인인 우리가 대상으로 향하는 사고를 중단하기만 하면 언제나 ‘신화적 사고’를 한다는 사실을 밝히게 되었다. 융은 이 ‘신화적 사고’를 나중에 집단적 무의식의 ‘원형’이라고 불렀다. 융에 따르면 집단적 무의식의 ‘원형’은 신화를 형성하는 창조적 충동이며, ‘신화소’가 된다. 말하자면 서로 문화적 교류가 불가능한 민족들 간에도 같은 모티브의 신화나 민담을 갖는 것은 보편적 심성이 가진 표상 능력에 기인한다.
‘원형’은 우리에게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정신현상으로 나타나는데, 이를 체험한 고대인들은 그것을 조상의 가르침으로 간주하여 보존하려 하였다. 이렇게 보존된 것들은 집단의 삶에 영향력을 갖는 이야기로서, 오늘날 우리에게 ‘신화’로 알려져 있다. 민담은 신화처럼 경험된 상태의 형태로 보전된 것이 아니라, 여러 세기 동안 구전되면서 신화보다는 비교적 잘 완결된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신화에는 그 내용이 일찍부터 기록 보존되었으므로, 신화의 배경이 되는 지역이나 특정 민족의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길가메쉬 신화>에서는 수메르 문화를,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그리스-로마의 지역과 민족을 고려하게 된다. 이에 반해 민담에는 구전되는 동안 자연히 지역적, 민족적 특성 등이 사라지고, 보편적 특성만이 남게 된다.
내용적으로 살펴보면, 흔히들 민담은 ‘권선징악’의 결말을 다루므로, 교육을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 분석심리학적으로는 신화와 민담에서 중심 인물상이 괴물 퇴치를 한다거나, 불사약, 혹은 만병통치약을 구하는 등의 내용은 모두가 인간성을 실현하는 궁극 목적의 상징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중심 인물상이 어려운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마침내 ‘왕과 왕비가 되어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다양한 삶의 국면을 맞이하고, 무엇을 반드시 실현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융학파 정신분석가들은 신화와 민담으로부터 그 내용을 ‘개인의 전(全)인격화(개성화Individuation)’와 관련지어 이해하려 한다.
결론적으로 집단적 무의식의 ‘원형’이 신화와 민담이라는 이야기 형식을 통하여 우리에게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가르쳐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밖에 신화와 민담은 한 시대를 지배하는 시대정신에 대한 ‘무의식’의 보상이나 집단의 삶의 변화를 다루고 있다. 매일 꾸는 꿈에 대한 이해도 신화와 민담에서 제공하는 보편적 심성의 전형적인 특질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